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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사는 이유

 

지금까지 23년 정도의 내 삶을 돌이켜 보면, 나는 부족함 없이 자랐다. 아버지는 대기업에 다니셨고 어머니는 공무원이었기 때문에 금전적인 부담은 거의 느껴본 적이 없다.

교육이라던지 교우관계, 등의 문제에 있어서도 별 탈 없이 지내왔다. 이렇게 부족함 없이 생활하는데도 불구하고 요즘은 삶에 대한 회의감을 많이 느끼는 것 같다.

 

불과 2주 전, 학교 기숙사에 쳐박혀 히키처럼 공부만 하던 시기에는, 하루에 2시간씩 왜 살아야 할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우울증 초기 증상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밤만 되면 잠을 잘 수가 없었고, 지금 내가 똑바로 살고있는것인지 아니면 아직도 그냥 용돈먹는 똥싸게에 산소만 낭비하는 벌레에 불과한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 상념의 시간들을 거치며 내가 알아낸 내 삶의 원동력은 결국 부모님에 대한 부채의식과 기회비용, 그리고 매몰비용에 관한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모님이 자신을 양육하며 들인 노력과 사랑은 돈 따위로 환산할 수 없다는데 동의 할 것이다. 아마 자식된 입장에서 그것들을 갚는 방법은, 부모님께서 연로하게 되었을 때 돌봐드리는 것 뿐이라고 생각한다.

결론은, 23살 식충의 입장에서 당장 그 큰 은혜를 갚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부채를 즉시 상환할 수 없다는 무력감은 사실 내가 죽는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주요한 이유였다.

나는 나태하고 가성비 낮은 인간이기 때문에 부모님이 나에게 투자하는 만큼의 산출을 할 수가 없다. 머리로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피곤하고 지치면 침대로 기어들어가는 나약한 인간인 것이다. 미래 또한 불투명하여 내가 언제 취업을 할 수 있을지, 돈을 많이 버는, 혹은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질 수 있을지 전혀 알 수 없다. 만약 운이 나빠 다친다거나, 다른 이유로 실패해 버린다면 아마 지금 포기하지 않아서 부모님께 더 많은 폐를 끼친것을 뼈저리게 후회할것이다.

 

물론 부모님은 나를 투자의 대상으로 보시지 않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시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생각은 어디까지나 내 자신을 하나의 상품으로 봤을때 이야기이다. 시장에서, 적절한 손절은 재투자의 기회를 열어준다. 앞으로 대학생활을 마무리하고, 취업 준비를 하며 쓰게 될 돈들이 너무 아깝다.

 

사실 간단한 해결책은, 지금 당장 알바몬에 접속해 내일부터 쿠팡에 출근하는 것이다. 경제활동을 시작하면 금전적으로 독립할 수 있고, 부모님은 나에게 주는 용돈을 모아 당신들의 노후자금에 보탤 수 있을것이다. 2030세대가 취업이 안된다고 찡얼거리는 것을 볼 때 마다 586세대가 겐세이 넣는 부분은 아마 이런 생각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그들의 다수는 돈을 번다는 것이 당장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였으리라고 추측한다. 그 시절은 부모님이 성인이 된 자식에게 용돈을 줄 정도로 풍족한 시대가 아니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원하든 원치않든 난 2030의 구성원이고, 당장 먹고 살 걱정이 없는 대학생 버러지의 입장에서 쿠팡 출근은 기대값이 낮다. 물론 지금처럼 하릴없이 블로그에 글이나 쓰는 이 시간에는 출근 하는게 100배는 더 경제적이기는 하지만, 풀타임 알바를 하기에는 공부가 미래에 대한 기대치가 더 높다. 이것이 앞서 짧게 언급한 기회비용에 대한 설명이자 일을 하지 않는 자의 핑게이다.

 

결론은 나의 죽음에 대한 고민은, 지금까지 살아온 매몰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에 살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매몰비용은 무언가를 선택할 때 고려되지 않아야 하는 비용이지만, 나는 부모님이 투자하신 모든 것의 정수이고 당신들에게 있어서는 매몰비용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내 인생은 곧 부모님의 인생이다. 삶을 진지하게 마감하려고 하는 사람들도 그 부분을 인지했으면 좋겠다. 자살한다는 것은 벌레만도 못한, 이기적인 선택이다. 나의 부모님이 나를 키우며 받았던 정신적, 신체적 손실을 회피하는 배은망덕한 자식이 되는 길이 자살이다. 부모님이 나를 키우며 힘들고 기뻤던 만큼, 나도 세상이 주는 고통과 행복을 충분히 겪어야 비로소 죽음이라는 평화를 누릴 자격이 생기는 것이다. 나는 아직 삶이라는 과제를 마무리 할 자격이 없다. 아마 인간 이외에 다른 동물들이 자살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은, 인간이 살아있는 생명체 중 가장 이기적이고 오만한 존재이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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